Title.등을 보여주는 나의 왕


 "후치야."

 안 자고 있었나? 잠꼬대인가? 둘 중 어느 것인지 알기 위해서라면 간단한 방법이 있지.

 "왜 그래?"

 "별이 참 곱지?"

 "윽. 별은 원래 참 고운 거야.  레니의 눈이 보고 있어서 더 예쁘긴 하겠지만, 당연한 말을 왜 하는 거지?"

 "…나, 말을 잘 못꺼내겠는데. 음. 저게 우리 아버지니?"

 "…그렇다고 생각해.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레니는 머리를 더 세게 누르며 물어왔다. 헤. 그런다고 내 어깨가 아프겠니.

 "확실한 거야, 아니야?"

 "내 생각이지만  그건 아무도 확인할 수 없어. 너도 알다시피  넌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진 거야.  그리고 후작은 네 얼굴도 보지 못했고.
아, 제레인트에게 물어보는 것이 차라리 낫겠는데."

 "신께 개인적인 용무를 물어보고 싶진 않아."

 "그래? 어, 신께서는 우리들의 개인사에 관심이 많으실 텐데?"

 "다른 방법은 없어?"

 "다른 방법?  글쎄. 아, 어떤 여행자가 널 델하파의 항구로 데려갔다고
그랬지? 해답이 있다면 그 여행자가 가지고 있겠지.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없어."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아, 네리아가 들려줬어."

 "그래?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줬는데?"

 레니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질러놓은 불길은  거대한 통나무를 송두리째 태우며 기세좋게 춤추고 있었다.
 바람이 차다… 왠지 신경쓰이는 바람이다. 레니는 그 바람에 자신의 대답을 실어보냈다.

 "다 들려줬어. 전부 다."

 "그래?"

 "이상해. 난."

 "뭐가?"

 레니는 여전히 머리를 내 어깨에 얹은 채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저 분은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인 거지? 그럼 난 지금 우리 아버지를 골탕먹이는 일행에 속해있고,  그리고 여기 전망 좋은 곳에서
우리 아버지가 골탕먹는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어. 이 정도면 기분이 이상해도
괜찮은 거 아냐?"

 윽. 그런 식으론 생각해보지 못했는걸. 맞는 말인데.

 "미안해."

 "뭐가? 후치가 미안할 것은 아무 것도 없잖아."

 "그래도 미안하고 싶어지는걸."

다레니안. 죄송합니다.  난 뻔뻔스러웠어요. 우리 인간도 결국 다른 사람 속을
그렇게 잘 알 수는 없는 것인가 보지요. 그러니까 예의범절이라
는  잘 조율된 형식도 있는 것이고. 내가 느꼈다고 생각한 핸드레이크도
전부 엉터리일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어떻게 핸드레이크가 될 수 있을까.

 "기분이 나쁜 거니?"

 "모르겠어. 난 이렇게 생각해.  아빠는 델하파에 계신 그 분이 나의 아
빠야."

 "찬성해줄게."

 "푸훗.  고마워. 하지만 저기서 우리들을 쫓아오는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도 틀린 것은 아니잖아.  사실을 모른 척해야 될까?  글쎄. 그건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옳은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잖아?"

 "그래. 후작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옳은 일에 대한 것은, 글쎄."

 "응?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야?"

 "아버지는…"

 난 잠시 말을 멈추고는  멀리 떨어져있는 레브네인 호수를 바라보았다.
불길이 그 수면에 이글거리고 있어 주위에 펼쳐진 산들은 검게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가물거리는 횃불들.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정신들이 없겠지.

 "난 길시언을 왕이라고 생각해."

 "무슨 말이지?"

 "길시언을 왕이라고 생각한다고. 물론 실제의 왕은 닐시언 전하고 길시언이
 왕의 홀을 들고 있거나  비단에 둘러싸여 왕좌에 앉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 길시언은 왕이야. 이해하기 어렵지?"

 "어려워."

 "동감이야."

 "애개?"

 "하하하. 그래.  나도 이해하기 어려워. 흠. 그런데 말이야. 내가 보기엔 길시언이
 왕이고 왕다워. 모르겠어. 닐시언 전하를 많이 사귀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내가 왕으로 생각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으니까, 난 계속 길시언을 왕으로
생각하겠어. 부탁이니까 이유를 물어봐줘."

 "이유가 뭔데?"

 "그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이 나라의 백성,
 아니 그의 친구라도 좋고.  어쨌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위험이
있을 땐  언제든지 그 사이에  서려는 사람이야. 그는 등을 보여주는 사람이지."

 "등을 보여준다?"

 "등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하지?  그래. 앞에 서야 돼.  앞에 서서 이끌고,
앞에서 오는  위험과 불안을 묵묵히 막아줘야 돼지. 그게 등을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등에는 표정도 없어. 따라서 사람들을 속일 수도 없지.
 그런데 길시언은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 거기에 덧붙여 더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그렇게 한다는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야. 그래서 난 길시언을 왕으로 생각해."

 레니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내 볼을 바라보았다. 뭐지? 고개를 돌려 똑바로
 바라보자 레니는 다시 앞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반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아니지?"

 "엥? 어, 어, 이봐!  내가 닐시언 전하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길시언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뭐 그런 평가할 말도 찾기 골치아픈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지?"

 "아냐! 어, 그러니까 말이야. 이건 내 마음의 문제야. 내 생활의 문제가
아니고. 내 생활이야 기반이 딱 잡혀있으니까  특별히 고민할 필요는
없단 말이야. 지금 당장 결혼해도 아내를 먹여살릴 자신은 있다구."

 "후후훗! 제미니양은 좋겠네…."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우으으윽.

 "악! 네리아가 그것도 이야기했어?"

 "말했잖아. 다했다니까."

 "어쨌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고삐를 잡아 돌리자구.
흠. 어쨌든 길시언을 왕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제야. 그건, 글쎄.
 신앙과 비슷한 것일까? 마음의 안정을 위해 신앙을 가지는 거지, 생활을
위해 신앙을 가지는 것은 아니잖아?"

 "흠. 겉으론 닐시언 전하의 충성된 신하.  하지만 속으론 길시언이야말로 나의 왕. 정확하니?"

 "차갑도록 정확해. 아니, 정확해서 차가운가 보지."

 "그런가.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면 되묻지는 마."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니는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실제의 아버지와 내 마음의 아빠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말인거니?"

 "고민을 안할 수는 없지만 시간 정하고 장소 정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래? 빨리 대답해.
  아름다우신 레이디. 귀양이 어느 가문의 기쁨인지를 여쭤볼 영광을 허락하시겠습니까?"

 레니는 웃었다. 밝은 웃음이다.

 "전  델하파에서 웨일즈 본야드라는 상호 아래 식품업을 하시는 그레이든씨의 여식입니다."

 "고민 끝?"

 "당분간은. 고마워."

by 카묘 | 2007/08/08 14:04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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